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씨였습니다. 땀과 비가 섞여서 등과 어깨를 적셨고 어두운 구름 빛깔은 마음을 더욱 가라앉게 만들었습니다.
오늘 같이 비가 많이 오는 날은 많은 노숙인 분들이 비를 맞기가 두려워 배식 장소에 오지 못한다고 합니다. 앞으로 언제 씻을지 모르는 환경에 비까지 맞으며 밖에서 버텨야 하는 노숙인 분들의 처지를 생각하면 안쓰러운 마음이 듭니다.
만약 제가 우산 없이 밖에서 비를 맞고 갈 곳마저 잃은 채 방황하고 있을 생각을
한다면 아마 서러움에 눈물을 흘렸을 것입니다.
어디에서도 맘 편히 있지 못하겠죠. 만날 사람도 없으니 외로울 테죠.
하지만 동정에만 머무를 생각은 없습니다. 오히려 이것이 더 위험한 일이겠지요.
남의 일인 것처럼 멀리서 바라보며 안타까워하기보다는 직접 그들을 만나고,
현실과 마주하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느꼈습니다.
현실은 비처럼 차가웠습니다. 비가 날카롭게 쏟아지는 날씨임에도 다 뜯어져 가는 비닐우산이나 비옷에 의지한 채 밥집 차량을 기다리는 손님들. 주눅 들고 힘없는
위태위태한 모습으로 음식을 받아 가는 손님들의 뒷모습은 마음을 무겁게 짓눌렀습니다. 무엇이 이분들에게 힘이 되어 줄 수 있을까요?
비를 피해 교회 처마 밑으로 옹기종기 모여있는 손님분들. 아마 갈 곳도 마땅치 않을 것입니다. 그들은 어디로 가야 환영받을 수 있을까요?
외면하고 싶은 현실에 직면하는 것은 늘 불편한 일입니다. 나 혼자 먹고 살아가기도 팍팍한 세상에 남 걱정까지 하고 사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내 앞도 깜깜한 동굴 속을 걷는 것 같아 불안한데 남을 도우며 사는 것이 가능할까요?
하지만 이 불안이 저만의 것이 아닙니다. 길거리에서 헤매며 당장 주어진 앞날을 살아가기조차 버거운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저에게도 충분히 일어날 일입니다. 아무리 대비하고 예측한들 내일의 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은 현실에 계속 직면하는 것입니다. 저에게 다가올 미래는 이분들의 현실과 맞닿아 있습니다. 피하고 싶어도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각오하며 오늘을 살지만, 또 도망치고 싶은 부끄러운 제 모습과 직면할 것입니다. 그래도 다시 한번 되뇌어봅니다. 더 이상 부끄럽지 않도록.